필암서원에서 500년 전 과거시험 부활

필암서원에서 500년 전 과거시험 부활
동아일보 2026-06-09
정승호 기자
광주호남취재본부
과거시험 재현행사 10월 3일 열려
8월 1일~9월 15일 홈페이지 접수
강독-한시-책문 등 3개 부문 진행
분야별 장원에게 100만 원 상금도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어린이들이 전통 유생복을 입고 선비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필암서원에서는 10월 3일 ‘2026 문불여장성 과거시험 재현행사’가 열린다. 장성군 제공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학문은 장성만 한 곳이 없다). 조선시대 호남 선비들은 장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을 비롯해 수많은 유학자가 배출되고, 필암서원을 중심으로 학문과 교육이 번성하면서 장성은 ‘호남의 문향(文鄕)’으로 불렸다. 그 명성을 낳은 배움의 공간 필암서원에서 올가을 과거시험이 열린다.
●과거 보러 필암서원으로…
전남 장성군과 필암서원산앙회는 10월 3일 세계유산 필암서원 일원에서 ‘2026 문불여장성 과거시험 재현행사’를 개최한다. 필암서원은 하서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에 등재됐다. 하서는 문과에 급제한 뒤 학문과 교육에 힘쓴 인물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문묘(文廟)에 배향돼 한국 유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산앙회는 하서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연구하는 학술단체다.
시험은 강독, 한시, 책문 등 3개 분야로 나눠 진행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소과(생원·진사시)와 대과를 거쳐 국가 인재를 선발하는 경쟁의 장이었다면, 필암서원의 과거시험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배움의 축제에 가깝다. 전통적인 선비 문화를 체험하고 학문의 가치를 되새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험 과목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강독은 사서삼경의 한 대목을 암송하는 전통 방식을 따르면서도 응시자가 시험 대목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한시는 조선시대 문과 시험의 핵심이었던 시문 창작 능력을 살려 ‘세계유산 필암서원’을 주제로 칠언율시를 짓도록 했다. 책문은 조선시대 대과의 최종 시험 과목을 현대식 논술로 재해석했다. 원래 책문은 임금이 국가 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응시자가 해결책을 논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를 고등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는 논술시험으로 바꿔 운영한다.
●유림부터 고교생까지… 9월 15일까지 접수
응시원서는 8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필암서원산앙회 홈페이지(www.piramsanang.or.kr)를 통해 접수할 수 있다. 시험은 10월 3일 오전 9시 30분부터 필암서원에서 진행되며, 시상식은 10월 10일 열린다. 분야별 우수상과 장려상을 포함해 모두 18명의 수상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분야별 장원 1명에게는 상금 100만 원이 수여된다.
장성에서는 1996년부터 전국 한시백일장과 한글백일장을 개최해 왔다. 그러나 단순한 문예행사를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보다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지역 유림과 학계가 1년 넘는 논의와 연구를 거쳐 과거시험 재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형 역사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됐다.
김재수 필암서원산앙회 이사장은 “하서 선생의 문과 급제와 학문정신을 기리고 세계유산 필암서원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과거시험 재현을 통해 장성이 가진 인문학적 자산을 지역민과 청소년들이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